자연과 시
동지 지나 한 달 본문
동지 지나 한 달
동지가 지난지 한달이 넘었다. 모두가 중국폐렴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통제속에서 답답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 이를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한 날들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 난감한 국면전환의 핵심은 백신인데, 이미 세계 40여개 국에서
백신을 확보하고 벌써부터 국민 접종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
백신은 제때에 확보하지도 않았으면서(집회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
아마 고의적으로 그랬으리라 본다) K방역이라고 자랑하며 홍보비
로 1, 200억원을 썼다니 그간 무엇을 어떻게 잘했다는 것인지 ..........
그동안의 나라 꼴을 볼 때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이 불암산 밑이라 답답할 때는 언제나 산길을 산책할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옳을까.
그간의 삶을 되돌아 본다.

↑ 동지인 2020년 12월 21일(음력 11월 7일) 불암산에서 바라본 석양은 아득히
멀었다. 북한산 능선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며 지던 석양은 북악산 부근까지
이르러 지고 있었다.
앞으로 석양은 저 위치에서 더 이상 남으로 내려가지 않고 서서히 북쪽으로
오르며 질 것이다. 석양 왼쪽에 북악산(청와대 뒷산)이 흐릿하게 보였다.

↑ 동지가 지나 한 달 후인 2021년 1월 19일(음력 12월 7일)에는 석양은 맑은
하늘을 곱게 물들이고 장엄한 모습으로 저무는데, 동지 때보다 오른쪽
(북쪽)으로 눈에 띄게 그 지는 위치가 이동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한 만큼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낮의 길이도 길어졌을 터인데, 하루에
1분 정도로 변한다니까 약 30분 가량 낮의 길이가 길어졌을 것이다.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은하계는 그 핵의 지름이 12,000광년, 은하 원반의
지름은 100,000광년이고, 태양을 비롯해 5,000억개의 별이 존재하는데 그 같은
은하계 수가 우주에는 수천억 개라고 한다.
그런데 또 그런 우주가 다중으로 존재한다면(다중우주론) ..............
불암산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면 늘 우주에 대한 상상과 함께 나의 존재를 생각
하게 되고 신비로움에 빠져들곤 하였다.

↑ 불암산 계곡은 꽁꽁 얼어붙어 빙판을 이루었는데(사진. 2021. 1. 22)
동지가 지나고 한 달 사이에는 절기상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있으니 년중 가장 추운 때이다.
그래서 초목들은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을 겪어야
했었다.

( ↑ 푸름을 잃은 야초들. 2021. 1. 23. /불암산 )
↓ 그러나 근래에 보기 드문 추위를 견디며 푸름을 잃지 않고 살아 있는
야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꽃봉오리까지 달고 있는 모습을........
예년 같으면 누렇게 말라 죽은 풀숲 틈새에 작은 키로 푸름을 유지하고
버티는 야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워낙 추워서 거의가 동사
해버렸다. 새삼 살아남은 야초들의 인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분명 희망의 상징,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소망이 아니겠는가.
( 2021. 1. 25./ 불암산)



↓ 또 불암산 산책길에서 특이한 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몸을 ㄱ자로 굽히고 또 굽히면서 살아가는 나무로
참나무들 틈에서 뿌리를 내린 소나무였다.
어떤 연유에서 저런 몸이 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을 보려는 일념으로 위를 향해 자라다 보니 몸통은
가늘어지고 허약해져 제 몸을 가누지 못해 절로 굽어지고
또 틀어지며 다시 굽어진 것일까?
강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한순간 쓰러지며 몸이 굽고 또
굽은 것일까? ............................
파란 하늘을 보며 찬란한 빛속에서의 삶을 향한 간절함,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애절함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살피니 그 기형적인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나무가 있었다. 쓰러지면 햇빛을 보지못해 죽을
처지인데 그 도움으로 인해 소나무는 그의 간절한 삶을 유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이한 아니,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삼라만상은 인과성(因果性)에 따라 그곳에서 그렇게 존재하며 변화한다.
불암산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명들도 다 그러하며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불암산 하늘을 무리지어 나르는 까마귀 무리(사진/ 2021. 1. 19.)들을 쳐다보며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들은 쌍을 이루어 먹을 것을 찾아 다니다가, 가끔 저녁 무렵이면 한 곳으로
모여 집단을 이루며 하늘을 날았다. 그들 모두가 얽히고 설킨 일가족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날았다가 내려앉고 또 다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그들만의 한바탕 축제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함이 참 부러웠다.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자유'가 아니런가.
작금의 제한된 삶, 위정자들의 부정과 위선, 그걸 덮기 위해 저지르는 또 다른
부정과 위선들, 드러나는 불의한 죄악상들, 그걸 말하는 자유에 대한 억압, .....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할 수록 수족이 불편해지는 것 같고 한편으론 끔찍한
동토(凍土)의 세상이 도래하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고 두렵기도 한 것이
솔직한 요즘의 생이었다.
동지가 지나 한 달이 넘었다. 머지않아 입춘이다.
오늘 밤은 편히 잠을 잘 수 있으려나.............................

또 한 겨울을 지나며
冬至가 지났지만 어둠은 여전히 勢를 부리고
나는 툭하면 꿈을 꾸었다.
음흉한 눈빛에 저항하다 깨어나는 꿈을
小寒 大寒은 혹한을 불러
말라 죽은 야초들 틈새 버티던 푸른 생명들
기를 쓰고 찾아내 死地로 몰았다.
백성이 군왕의 존재를 느끼지 않고
저마다 품성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無爲의 리더십이 최고의 정치거늘
權謨術數와 僞善이 亂舞하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의 환경
비민주, 구속된 자유에 대한 불안감에
너희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족속들이고
적당한 선심에 혹하는 보통인들이며
결국 힘없이 굴복할 위인들이란 모멸감(侮蔑感)에
긴 겨울밤
어이 편히 잠을 자고
惡夢 없이 지나리오.
그러나
患難 사이로 생명을 껴안고 꽃봉오리를 키우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겠다는
푸른 생명들의 忍耐를 보았다.
먼저 생긴 팔(가지)을 죽이고 툭툭 잘라내며
이리로 굽고 저리로 굽으며 빛을 향하는 나무
거룩한 생의 一念을 보았다.
삐끔히 떴다가 아득히 저무는 석양을 볼 때는
無限 宇宙의 신비심에 넋을 잃고
경외심에 주저앉아 손을 모았다.
생명은 강인하고 영원하다
긴 어둠은 여명에 물러갈 것이며
태양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빛날 것이다.
고귀한 생명, 평정심, 청정한 삶
大自然과 함께하는 평화
음흉한 자가 결코 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글, 사진 / 최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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